하늘땅물벗 서강

181001 하늘땅물벗 2주년 서강벗소개

'찬미받으소서' 길라잡이 서론

작성자
태희 홍
작성일
2018-10-07 12:12
조회
84
서 문

회칙 요약

[1]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저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라고 노래하셨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2] 이 누이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3] 1963년 요한 23세 성인께서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제안할 것을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통하여 요청하셨습니다. 교종께서는 특별히 우리의 공동의 집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고자 이 회칙을 쓰셨습니다.
[4] 나는 환경 파괴에 관하여 언급해 온 여러 교종들과 세계 전역의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복자 바오로 6세 교종께서는 1971년 환경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시며 인간의 무절제한 행위로 인류에게서 식량과 가정을 빼앗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세계적인 생태적 회개를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성인께서는 “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윤리적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인간 환경의 파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참다운 회심은 “참다운 인간 생태론”으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노력은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다스리는, 이미 확립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참다운 인간 발전은 단순히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특성을 가집니다.
[6] 전임자이신 베네딕도 16세 교종께서도 우리가 무책임한 행동으로 지구의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사회 환경까지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실을 인정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자연이라는 책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것으로” 환경, 생명, 성, 가정, 사회관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최종 결정을 내리고 그저 우리의 소유물로 여겨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피조물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또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법정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피조물의 착취가 시작됩니다.”

동일한 관심을 통한 일치
[7] 베네딕도 16세 교종의 이러한 말씀은 많은 과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과 시민단체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사유를 풍요하게 해 준 모든 이의 성찰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밖의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와 다른 종교들, 특히 동방정교회의 존경하는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님도 같은 우려를 나타내었습니다.
[8]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님께서는 우리 모두 자신이 조금씩 해를 입힌 지구를 회복시키기 위해 각자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을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에게 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연 세계에 저지른 죄는 우리 자신과 하느님을 거슬러 저지른 죄”이기 때문입니다.
[9]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문제의 윤리적 영적 근원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소비 대신 희생을, 탐욕 대신 관용을, 낭비 대신 나눔의 정신으로” 깊이 변화하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세계적인 차원에서 하느님과 우리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방법인 친교의 성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가장 작은 먼지에서 나와 그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10]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의 수호성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야기할 “통합 생태론”을 기쁘고 참되게 실천한 가장 훌륭한 모범이십니다. 교종께서는 로마 주교로 선출되면서 그분의 이름을 길잡이이자 영감으로 삼았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이웃과 자연과 자기 자신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사셨던 분입니다.
[11]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피조물과 모든 사람에게 경외와 놀라움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을 하찮은 경제적인 소비물로 바라보기보다 사랑의 유대로 자신과 결합한 자매와 형제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돌보아야 한다는 소명을 느끼신 것입니다. 성인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바라볼 때마다 찬미하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성인의 태도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순간, 우리는 지배자, 소비자, 무자비한 착취자의 태도를 갖게 되어 다음 세대에 아무것도 남겨놓지 못할 것입니다.
[12] 성경에 충실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창조주 하느님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알아볼 수 있는 창으로 피조물을 보았습니다.

개인적 권유
[13] 우리 인류는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으며 여전히 우리의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데 협력할 능력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회칙의 1장에서 설명할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환경 파괴의 비극을 해결하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14] 교종께서는 긴급한 대화를 호소합니다. 모든 이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환경 운동이 있지만, 강력한 힘들이 반대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순히 즐거운 일만 찾으며 이 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당면한 생태적 재난을 회복하기 위한 어떤 일도 소용이 없다고 믿기도 합니다. 아직도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과 개발이라고 생각하며 문제를 추가하여 생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교종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한 의지와 재능의 새로운 세계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15] 교종께서는 이 회칙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규모와 긴급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회칙은 이제 교회의 사회 교리가 되었습니다. 먼저, 오늘날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현재의 위기를 간략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생태 위기에 관한 직접적인 응답을 줄 수 있는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의 원칙들을 성찰하여 볼 것입니다. 세 번째로, 현재 상황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 위기의 깊은 뿌리에 관하여 성찰해 볼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에 비추어 교종은 개인적이고 국제적인 모두의 측면에서 대화와 행동을 위한 폭넓은 제안을 합니다. 끝으로, 교종은 동기 부여와 교육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영감을 얻은 지침을 제시할 것입니다.
[16] 몇 가지 핵심 주제가 이 회칙에서 되풀이하여 나타납니다. 가난한 이들과 손상 받기 쉬운 지구 사이의 긴밀한 관계,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경제와 기술 그리고 발전을 이해하는 방식,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국제간의 정책에 대한 지극히 중대한 필요성, 숨김없는 솔직한 토론의 필
요성, 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양식의 제안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성찰하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피조물을 하찮은 경제적인 소비물로 바라보기보다 사랑의 유대로 자신과 결합된 자매와 형제로 보았습니다.[11]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8], [9]항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의 의견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칙 해설

교종의 회칙들이 국제사회에서 주목 받는 일은 드뭅니다. 회칙은 교종이 발표할 수 있는 문서 중에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교종들은 많은 회칙을 발표하여 왔습니다. 요한바오로 2세 성인은 14개의 회칙을 발표하였고, 레오13세(1878-1903 재임)는 묵주기도에 관한 것, 가톨릭 학교의 철학 교수법등을 포함하여 80개 이상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오13세가 1891년 발표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는 특별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노동자와 거대 기업 간의 관계, 낡은 자본주의와 떠오르는 사회주의 사이의 투쟁 등,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발언하였습니다. 레오 교종은 이 둘의 어느 편에 서기보다 가톨릭의 가르침과 자연적 지혜에 비추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방종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정의와 자비의 덕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 사이의 관계에 희망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의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새로운 사태」는 현세의 사회적 위기에 관한 교회의 공식적 반응인 일련의 “사회 회칙” 맥락의 시초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정한 회칙들은 보다 광범위한 세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에 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관례적으로 이전의 회칙들을 언급하면서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시작하고 있는데, 1960년대 초 세계가 핵에 의한 자기파괴 행위의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평화를 촉구하였던 성 요한23세의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로 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환경 위기가 매우 긴급하다는

교종의 주요 사회 회칙들
레오13세, 「새로운 사태」 Rerum Novarum
자본과 노동, (1891)
비오11세, 「사십주년」 Quadragesimo Anno
사회 질서의 재건설, (1931)
요한23세, 「어머니와 교사」 Mater et Magistra
그리스도교와 사회 진보, (1961)
요한23세,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
보편적 평화의 건설, (1963)
바오로6세, 「민족들의 발전」 Populorum Progressio
민족들의 발전, (1967)
요한바오로2세,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ts
인간 노동, (1981)
요한바오로2세, 「사회적 관심」 Sollicitudo Rei Socialis 「민족들의 발전」 이십주년 기념, (1987)
요한바오로2세, 「백주년」 Centesimus Annus
「새로운 사태」백주년 기념, (1991)
베네딕도16세, 「진리 안의 사랑」 Caritas in Veritate
통합적 인간 발전, (2009)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회칙들 및 교종 문서들이 환경 문제에 관하여 언급한 적이 있지만, 교회가 환경 문제에 관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하고 전적으로 그 문제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첫 번째 회칙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임 교종들인 바오로 6세, 성 요한바오로 2세, 그리고 베네딕도 16세 뿐만 아니라 동방정교회의 수장인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모두 환경 위기에 관하여 긴급함을 이야기 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시작합니다.[4-9] 실제로 베네딕도 16세는 환경 문제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바티칸을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국가로 만들어서 “녹색 교종”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뿐 아니라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가 환경 문제에 헌신해야하는 이유를 깊이 있게 설명한 것으로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서한이 최초일 것입니다.
또한 2013년 교종으로 선출 된 이래 그는 사회 정의와 가난한 자의 문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도록 강력한 활동과 담대한 가르침을 설파해 왔으며 이 회칙은 교종의 첫 번째 사회 회칙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가 보다 더 사회적 연대에 관한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전임 교종들도 이러한 가르침들을 분명히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주목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러한 가르침들이 우선적이며 중심에 있다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교종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한 것조차 사람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유한 영성은 그를 근본적으로 단순한 삶으로 이끌고 가장 작은 피조물조차 형제자매로 인식하게 하였습니다.[11] 이것은 재물을 쌓아둔 삶을 꿈꾸는 이에게는 진정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 회칙은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긴 문서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핵심 요약”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글을 쓰는 스타일은 교수가 교과서를 철저하게 설명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생각과 통찰을 서로 꿰어가는 이야기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단순한 정보나 요점정리 혹은 단체의 강령이 아니라는 것도 그의 요점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영성이고 삶의 방식입니다. 교종 회칙의 제목인 Laudato Si는 “찬미 받으소서”라는 의미로, 모든 피조물의 하느님을 찬미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찬미가의 시작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들을 볼 때 단순히 정보나 견해들을 이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영적 발전과 윤리적 행동에 관한 것이어야 하고, 우리를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을 기도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목적으로 편집되었습니다. 첫째로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이 책은 긴 문장 안의 주요 핵심을 찾아내는 길잡이입니다. 여러분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도시에 가서 며칠 머문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마도 당신은 그냥 단순히 거리를 걸으려 하지 않고 흥미 있는 것들을 체험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중요한”이란 단지 커다란 랜드마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장 큰 볼거리는 아니지만 시간 보낼 가치가 있는 “골목 길”에서 보물을 종종 찾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문장 안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 책에는 그러한 독서 길잡이에 덧붙여 기도를 위한 방향과 일상에서의 질문들을 첨부하였습니다. 이 책을 그룹 단위나 혹은 개인적으로 활용하면, 영적인 독서와 프란치스코 교종이 제시하는 사회 교리를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연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회칙의 깊은 지혜를 단지 몇 가지의 요점 정리로 잡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이 이 회칙에서 반복하여 강조하는 어떤 주요 주제가 있고, 핵심적 통찰이 있습니다. 회칙을 읽을 때, 이러한 핵심 주제와 통찰들이 일상생활에서 방향을 잡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종의 핵심 주제들
16항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되풀이하여 언급되는 핵심 주제들을 적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취약함과의 긴밀한 관계,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기술에서 나오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힘에 대한 비판,
경제와 발전에 대하여 다른 이해 방식을 찾으라는 요청,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생태계의 인간적인 의미,
숨김없는 솔직한 토론의 필요성,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의 중대한 책임,
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양식의 제안”

1.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문구는 전체 회칙을 통하여 수시로 나타납니다. 이는 또한 현대 환경주의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생태계 연구는 하나의 변화가 예상치 않은 많은 다른 변화들을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에게서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적 생활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삶에서 절대로 하나의 작은 분리된 방과 같은 것이 아니며, 세계와 분리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가 한 때 “제의방 신자”들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교종이 기도나 전례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실생활과 세상 그리고 창조물들로부터 유리된 기도와 폐쇄된 전례를 반대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모든 것은 영성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연결되며 하느님 뿐만 아니라 피조물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하나이고 공동의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이러한 연결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 연결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회칙을 읽으면서 연결되어 있음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2. 환경 위기는 근본적으로 영적 위기이다.
「찬미 받으소서」가 발표되고 며칠 후, 이 회칙에 관하여 교종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피터 턱슨 추기경이 UN에서 환경에 대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하나의 문제는 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가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 문제가 실제로 물질적인 문제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정치적 관계들과 법률에 관한 것이며 물리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에 관한 것입니다. 교종은 1장에서 과학적 배경에 관하여 설명하고 5장에서 국제적 지역적 정책들의 중요성에 관하여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위기의 뿌리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문제들은 마치 “석탄 광산의 카나리아”와 같습니다. 즉 동굴로 들여보낸 카나리아의 죽음은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말 해주는 것입니다. 환경 문제도 지구의 미래를 예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의 도입부에서, 많은 환경 시스템들 안에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다”[2]고 말씀 하십니다. 교종은 환경 문제들을 영적 문제들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3. 기술적 해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새롭고 다른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
뭔가가 더럽혀 졌다면, 우리는 그것을 깨끗이 하기 위해 적합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환경에 필요한 것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적인 위기라면 그것은 우리의 생활 방식에 나타나게 됩니다. 교종은 이를 환경과 쓰레기를 양산하는 “버리는 문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삶을 만들기 위한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2010년 유엔의 세계 총자원 사용량에 관한 보고는 부유한 국가들은 저개발의 가난한 국가들에 비하여 10배 정도의 물질을 소비하며 세계 평균치의 2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좋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우리 생활 방식을 지지해 주지는 않습니다. 회칙의 이러한 주제는 우리가 거울 속의 나를 보게 합니다. 교종은 계속하여 단순하고 덜 소비하는 생활 태도가 궁극적으로 영적으로 풍부하게 만들고 타인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시종일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4. 지구를 누이 혹은 우리 자신의 집으로 사랑할 필요가 있다.
「찬미 받으소서」의 첫머리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공동의 집”과 “누이인 지구”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집의 이미지와 이것을 위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지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형제자매를 쓰고 버리는 원료로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를 원료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만물은 하느님의 놀라운 창조의 부분이며 그 스스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상은 해결해야 할 문제 이상의 것으로, 감사와 찬미로 관상해야 하는 기쁜 신비”[12]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미국의 살아있는 위대한 환경작가인 웬델 베리는 “이 세상 것 모두 정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정감이란 우리의 가슴이 다른 것들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무엇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이러한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처럼, 모든 피조물을 대하는 성프란치스코의 태도는 그가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의 유대로 결합 된”[11] 것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긴급히 필요한 것에 대하여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소비자들”이며 죄 많은 “주인들”로서 접근할 뿐일 것입니다.

이 회칙을 읽으면서, 우리는 또한 겸손의 은총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항상 그리스도를 반영하며,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런 점에서 최고의 사례입니다. 우리가 사회적 문제에 관하여 토론할 때에 논쟁이 일어나 반목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기심이 분출하여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편”에 대한 비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논쟁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회피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는 함께 확실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 아닙니다. 교종이 진보당이나 보수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는 한쪽 편을 위하여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 발전을 이루어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 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가 우리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듣고, 그리고 서로 발전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과 교종, 우리 상호간,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경청하도록 합시다. 이에 대하여 서로 반발하지 말고 진심으로 기도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함께 행동합시다.
전체 0

181001 하늘땅물벗 2주년 서강벗소개

'찬미받으소서' 길라잡이 서론

작성자
태희 홍
작성일
2018-10-07 12:12
조회
84
서 문

회칙 요약

[1]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저의 주님, 찬미 받으소서.”라고 노래하셨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2] 이 누이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3] 1963년 요한 23세 성인께서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제안할 것을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통하여 요청하셨습니다. 교종께서는 특별히 우리의 공동의 집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고자 이 회칙을 쓰셨습니다.
[4] 나는 환경 파괴에 관하여 언급해 온 여러 교종들과 세계 전역의 다른 교회 지도자들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복자 바오로 6세 교종께서는 1971년 환경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시며 인간의 무절제한 행위로 인류에게서 식량과 가정을 빼앗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는 세계적인 생태적 회개를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성인께서는 “참다운 인간 생태론의 윤리적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인간 환경의 파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참다운 회심은 “참다운 인간 생태론”으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노력은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다스리는, 이미 확립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참다운 인간 발전은 단순히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특성을 가집니다.
[6] 전임자이신 베네딕도 16세 교종께서도 우리가 무책임한 행동으로 지구의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사회 환경까지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실을 인정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자연이라는 책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것으로” 환경, 생명, 성, 가정, 사회관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최종 결정을 내리고 그저 우리의 소유물로 여겨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피조물이 손상을 입게 됩니다. 또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법정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피조물의 착취가 시작됩니다.”

동일한 관심을 통한 일치
[7] 베네딕도 16세 교종의 이러한 말씀은 많은 과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과 시민단체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사유를 풍요하게 해 준 모든 이의 성찰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밖의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와 다른 종교들, 특히 동방정교회의 존경하는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님도 같은 우려를 나타내었습니다.
[8]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님께서는 우리 모두 자신이 조금씩 해를 입힌 지구를 회복시키기 위해 각자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을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에게 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연 세계에 저지른 죄는 우리 자신과 하느님을 거슬러 저지른 죄”이기 때문입니다.
[9]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문제의 윤리적 영적 근원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소비 대신 희생을, 탐욕 대신 관용을, 낭비 대신 나눔의 정신으로” 깊이 변화하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세계적인 차원에서 하느님과 우리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방법인 친교의 성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가장 작은 먼지에서 나와 그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10]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의 수호성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야기할 “통합 생태론”을 기쁘고 참되게 실천한 가장 훌륭한 모범이십니다. 교종께서는 로마 주교로 선출되면서 그분의 이름을 길잡이이자 영감으로 삼았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이웃과 자연과 자기 자신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사셨던 분입니다.
[11]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피조물과 모든 사람에게 경외와 놀라움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을 하찮은 경제적인 소비물로 바라보기보다 사랑의 유대로 자신과 결합한 자매와 형제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돌보아야 한다는 소명을 느끼신 것입니다. 성인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바라볼 때마다 찬미하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성인의 태도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순간, 우리는 지배자, 소비자, 무자비한 착취자의 태도를 갖게 되어 다음 세대에 아무것도 남겨놓지 못할 것입니다.
[12] 성경에 충실한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창조주 하느님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알아볼 수 있는 창으로 피조물을 보았습니다.

개인적 권유
[13] 우리 인류는 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으며 여전히 우리의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데 협력할 능력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회칙의 1장에서 설명할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환경 파괴의 비극을 해결하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14] 교종께서는 긴급한 대화를 호소합니다. 모든 이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세계적인 환경 운동이 있지만, 강력한 힘들이 반대하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순히 즐거운 일만 찾으며 이 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당면한 생태적 재난을 회복하기 위한 어떤 일도 소용이 없다고 믿기도 합니다. 아직도 어떤 이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과 개발이라고 생각하며 문제를 추가하여 생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교종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한 의지와 재능의 새로운 세계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15] 교종께서는 이 회칙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규모와 긴급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회칙은 이제 교회의 사회 교리가 되었습니다. 먼저, 오늘날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현재의 위기를 간략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생태 위기에 관한 직접적인 응답을 줄 수 있는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의 원칙들을 성찰하여 볼 것입니다. 세 번째로, 현재 상황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 위기의 깊은 뿌리에 관하여 성찰해 볼 것입니다. 이러한 성찰에 비추어 교종은 개인적이고 국제적인 모두의 측면에서 대화와 행동을 위한 폭넓은 제안을 합니다. 끝으로, 교종은 동기 부여와 교육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영감을 얻은 지침을 제시할 것입니다.
[16] 몇 가지 핵심 주제가 이 회칙에서 되풀이하여 나타납니다. 가난한 이들과 손상 받기 쉬운 지구 사이의 긴밀한 관계,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경제와 기술 그리고 발전을 이해하는 방식,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국제간의 정책에 대한 지극히 중대한 필요성, 숨김없는 솔직한 토론의 필
요성, 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양식의 제안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성찰하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피조물을 하찮은 경제적인 소비물로 바라보기보다 사랑의 유대로 자신과 결합된 자매와 형제로 보았습니다.[11]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8], [9]항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의 의견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회칙 해설

교종의 회칙들이 국제사회에서 주목 받는 일은 드뭅니다. 회칙은 교종이 발표할 수 있는 문서 중에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교종들은 많은 회칙을 발표하여 왔습니다. 요한바오로 2세 성인은 14개의 회칙을 발표하였고, 레오13세(1878-1903 재임)는 묵주기도에 관한 것, 가톨릭 학교의 철학 교수법등을 포함하여 80개 이상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오13세가 1891년 발표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는 특별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노동자와 거대 기업 간의 관계, 낡은 자본주의와 떠오르는 사회주의 사이의 투쟁 등,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발언하였습니다. 레오 교종은 이 둘의 어느 편에 서기보다 가톨릭의 가르침과 자연적 지혜에 비추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방종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정의와 자비의 덕을 바탕으로 하여 그들 사이의 관계에 희망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의 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새로운 사태」는 현세의 사회적 위기에 관한 교회의 공식적 반응인 일련의 “사회 회칙” 맥락의 시초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정한 회칙들은 보다 광범위한 세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에 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관례적으로 이전의 회칙들을 언급하면서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시작하고 있는데, 1960년대 초 세계가 핵에 의한 자기파괴 행위의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평화를 촉구하였던 성 요한23세의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로 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환경 위기가 매우 긴급하다는

교종의 주요 사회 회칙들
레오13세, 「새로운 사태」 Rerum Novarum
자본과 노동, (1891)
비오11세, 「사십주년」 Quadragesimo Anno
사회 질서의 재건설, (1931)
요한23세, 「어머니와 교사」 Mater et Magistra
그리스도교와 사회 진보, (1961)
요한23세,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
보편적 평화의 건설, (1963)
바오로6세, 「민족들의 발전」 Populorum Progressio
민족들의 발전, (1967)
요한바오로2세,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ts
인간 노동, (1981)
요한바오로2세, 「사회적 관심」 Sollicitudo Rei Socialis 「민족들의 발전」 이십주년 기념, (1987)
요한바오로2세, 「백주년」 Centesimus Annus
「새로운 사태」백주년 기념, (1991)
베네딕도16세, 「진리 안의 사랑」 Caritas in Veritate
통합적 인간 발전, (2009)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회칙들 및 교종 문서들이 환경 문제에 관하여 언급한 적이 있지만, 교회가 환경 문제에 관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하고 전적으로 그 문제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첫 번째 회칙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임 교종들인 바오로 6세, 성 요한바오로 2세, 그리고 베네딕도 16세 뿐만 아니라 동방정교회의 수장인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모두 환경 위기에 관하여 긴급함을 이야기 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시작합니다.[4-9] 실제로 베네딕도 16세는 환경 문제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바티칸을 세계 최초로 탄소중립 국가로 만들어서 “녹색 교종”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뿐 아니라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가 환경 문제에 헌신해야하는 이유를 깊이 있게 설명한 것으로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서한이 최초일 것입니다.
또한 2013년 교종으로 선출 된 이래 그는 사회 정의와 가난한 자의 문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도록 강력한 활동과 담대한 가르침을 설파해 왔으며 이 회칙은 교종의 첫 번째 사회 회칙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가 보다 더 사회적 연대에 관한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전임 교종들도 이러한 가르침들을 분명히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주목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러한 가르침들이 우선적이며 중심에 있다고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교종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한 것조차 사람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유한 영성은 그를 근본적으로 단순한 삶으로 이끌고 가장 작은 피조물조차 형제자매로 인식하게 하였습니다.[11] 이것은 재물을 쌓아둔 삶을 꿈꾸는 이에게는 진정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 회칙은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긴 문서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핵심 요약”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글을 쓰는 스타일은 교수가 교과서를 철저하게 설명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생각과 통찰을 서로 꿰어가는 이야기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단순한 정보나 요점정리 혹은 단체의 강령이 아니라는 것도 그의 요점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영성이고 삶의 방식입니다. 교종 회칙의 제목인 Laudato Si는 “찬미 받으소서”라는 의미로, 모든 피조물의 하느님을 찬미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찬미가의 시작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들을 볼 때 단순히 정보나 견해들을 이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영적 발전과 윤리적 행동에 관한 것이어야 하고, 우리를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을 기도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목적으로 편집되었습니다. 첫째로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이 책은 긴 문장 안의 주요 핵심을 찾아내는 길잡이입니다. 여러분이 전혀 모르는 새로운 도시에 가서 며칠 머문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마도 당신은 그냥 단순히 거리를 걸으려 하지 않고 흥미 있는 것들을 체험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중요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중요한”이란 단지 커다란 랜드마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장 큰 볼거리는 아니지만 시간 보낼 가치가 있는 “골목 길”에서 보물을 종종 찾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문장 안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 책에는 그러한 독서 길잡이에 덧붙여 기도를 위한 방향과 일상에서의 질문들을 첨부하였습니다. 이 책을 그룹 단위나 혹은 개인적으로 활용하면, 영적인 독서와 프란치스코 교종이 제시하는 사회 교리를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연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회칙의 깊은 지혜를 단지 몇 가지의 요점 정리로 잡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이 이 회칙에서 반복하여 강조하는 어떤 주요 주제가 있고, 핵심적 통찰이 있습니다. 회칙을 읽을 때, 이러한 핵심 주제와 통찰들이 일상생활에서 방향을 잡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종의 핵심 주제들
16항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되풀이하여 언급되는 핵심 주제들을 적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취약함과의 긴밀한 관계,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기술에서 나오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힘에 대한 비판,
경제와 발전에 대하여 다른 이해 방식을 찾으라는 요청,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생태계의 인간적인 의미,
숨김없는 솔직한 토론의 필요성,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의 중대한 책임,
버리는 문화와 새로운 생활양식의 제안”

1.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문구는 전체 회칙을 통하여 수시로 나타납니다. 이는 또한 현대 환경주의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생태계 연구는 하나의 변화가 예상치 않은 많은 다른 변화들을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에게서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영적 생활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삶에서 절대로 하나의 작은 분리된 방과 같은 것이 아니며, 세계와 분리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가 한 때 “제의방 신자”들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교종이 기도나 전례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실생활과 세상 그리고 창조물들로부터 유리된 기도와 폐쇄된 전례를 반대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모든 것은 영성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연결되며 하느님 뿐만 아니라 피조물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하나이고 공동의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이러한 연결을 볼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 연결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 회칙을 읽으면서 연결되어 있음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2. 환경 위기는 근본적으로 영적 위기이다.
「찬미 받으소서」가 발표되고 며칠 후, 이 회칙에 관하여 교종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피터 턱슨 추기경이 UN에서 환경에 대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하나의 문제는 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가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 문제가 실제로 물질적인 문제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정치적 관계들과 법률에 관한 것이며 물리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에 관한 것입니다. 교종은 1장에서 과학적 배경에 관하여 설명하고 5장에서 국제적 지역적 정책들의 중요성에 관하여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위기의 뿌리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문제들은 마치 “석탄 광산의 카나리아”와 같습니다. 즉 동굴로 들여보낸 카나리아의 죽음은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말 해주는 것입니다. 환경 문제도 지구의 미래를 예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의 도입부에서, 많은 환경 시스템들 안에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다”[2]고 말씀 하십니다. 교종은 환경 문제들을 영적 문제들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3. 기술적 해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새롭고 다른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
뭔가가 더럽혀 졌다면, 우리는 그것을 깨끗이 하기 위해 적합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환경에 필요한 것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적인 위기라면 그것은 우리의 생활 방식에 나타나게 됩니다. 교종은 이를 환경과 쓰레기를 양산하는 “버리는 문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삶을 만들기 위한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2010년 유엔의 세계 총자원 사용량에 관한 보고는 부유한 국가들은 저개발의 가난한 국가들에 비하여 10배 정도의 물질을 소비하며 세계 평균치의 2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좋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우리 생활 방식을 지지해 주지는 않습니다. 회칙의 이러한 주제는 우리가 거울 속의 나를 보게 합니다. 교종은 계속하여 단순하고 덜 소비하는 생활 태도가 궁극적으로 영적으로 풍부하게 만들고 타인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시종일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4. 지구를 누이 혹은 우리 자신의 집으로 사랑할 필요가 있다.
「찬미 받으소서」의 첫머리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공동의 집”과 “누이인 지구”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집의 이미지와 이것을 위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지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형제자매를 쓰고 버리는 원료로 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를 원료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만물은 하느님의 놀라운 창조의 부분이며 그 스스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상은 해결해야 할 문제 이상의 것으로, 감사와 찬미로 관상해야 하는 기쁜 신비”[12]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미국의 살아있는 위대한 환경작가인 웬델 베리는 “이 세상 것 모두 정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합니다. 정감이란 우리의 가슴이 다른 것들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무엇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도 이러한 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처럼, 모든 피조물을 대하는 성프란치스코의 태도는 그가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의 유대로 결합 된”[11] 것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애정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긴급히 필요한 것에 대하여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소비자들”이며 죄 많은 “주인들”로서 접근할 뿐일 것입니다.

이 회칙을 읽으면서, 우리는 또한 겸손의 은총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항상 그리스도를 반영하며,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런 점에서 최고의 사례입니다. 우리가 사회적 문제에 관하여 토론할 때에 논쟁이 일어나 반목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기심이 분출하여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편”에 대한 비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논쟁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회피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는 함께 확실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 아닙니다. 교종이 진보당이나 보수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는 한쪽 편을 위하여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 발전을 이루어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 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겸손은 우리가 우리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듣고, 그리고 서로 발전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과 교종, 우리 상호간,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경청하도록 합시다. 이에 대하여 서로 반발하지 말고 진심으로 기도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함께 행동합시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