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땅물벗 서강

181001 하늘땅물벗 2주년 서강벗소개

제1장 우리의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작성자
태희 홍
작성일
2018-10-09 16:53
조회
72
제1장. 우리의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회칙 요약
[17] 신학적 혹은 철학적 성찰보다는 우리의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18] 오늘날 삶과 노동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 움직이는 현상을 “신속화”라고 지칭됩니다. 인간의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대부분은 인간 존엄성이나 생태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19] 인류는 지속성과 상관없이 지구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방금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던져진 환경에 관한 주요 질문들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언제까지나 숨겨질 수는 없습니다.

I. 오염과 기후변화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
[20] 오염은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한 부분입니다. 오염된 대기로 숨을 쉬는 것은 특히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21] 독성 폐기물은 공해 문제의 범인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데나 매립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집인 지구를 “엄청난 쓰레기 더미”로 만듭니다. 한 때 아름다웠던 풍경이 쓰레기 더미로 뒤덮였습니다.
[22] 종이나 다른 물건들의 대부분이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버리는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손쉽게 재활용 될 수 있는 종이도 한번 사용되고 버려집니다. 한 번 사용되고 또 재사용 하는 순환 방식을 만듦으로써, 소비를 절제하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최소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공재인 기후
[23] 기후는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이며 인간 삶의 많은 필수 조건들과 연관되어 있는 복잡계입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 온난화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확실한 과학적 견해”로 제기되었습니다. 화산활동과 태양의 활동 주기 같은 다른 요소들도 온난화에 영향을 주지만, 우리의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이 광범위한 온실 가스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24] 기후 변화는 모든 생명체의 기초가 되는 탄소의 순환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용할 수 있는 물 공급이 감소하였고, 농업 생산이 줄어들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메탄 가스의 배출이 증가하였습니다.
[25] 가난한 이들은 이러한 기후 변화에 부자들보다 더 많이 영향을 받습니다.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인구의 거의 3분의 2가 해안 근접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농업과 어업과 산림업 및 지구의 가난한 이들의 대부분의 생계 수단에 영향을 줍니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과 식물이 이주하게 되면 가난한 이들 또한 생계에 타격을 받아 불안감을 안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떻게 이들의 비극에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26]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힘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그 문제들을 부정하려 합니다. 그들은 고통받는 이들의 곤경을 무시하면서 이에 관한 과학적 사실에 대한 논쟁만 합니다. 우리는 오염 가스를 줄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한 계획이 긴급히 필요합니다.

성찰하기
?기후 변화의 원인에 대하여 오늘날 과학적으로 알려진 견해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석탄과 석유등 화석 연료가 기후 변화의 원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5], [26]항의 가난한 이들이 특별히 더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난하고 약자입니까? 아니면 부자이고 강자입니까?

II. 물의 문제
[27] 잘사는 나라들에 있어서 자원을 낭비하고 버리는 습관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한편에서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8] 깨끗한 식수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 때는 풍부하였던 물 공급이 이제는 수요가 지속적 공급을 초과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물 부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9] 가난한 나라에서 이용 가능한 물의 대부분이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수많은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 되고 있고, 농민들에게는 낮은 생산성의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되는 물조차 산업폐기물과 화학제품들로 오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0] 어떤 곳에서는 이 부족한 물이 시장 논리에 지배되는 상품이 되어, 가난한 이들은 돈을 주고 사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권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사회적 부채”를 지고 있으므로, 가난한 이들에게 물과 위생 시설을 마련해 주려고 재정지원을 확대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물의 낭비가 지속되는 선진국들은 저개발 물 부족 국가와의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 이러한 심각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1] 물과 그 것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물 부족이 발생하면서, 다국적 대기업들이 물을 통제하면 커다란 분쟁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III. 생물 다양성의 감소
[32] 경제, 상업, 생산 활동에 대한 근시안적 접근으로 지구의 자원이 착취되고 있습니다. 숲과 삼림 지대의 손실은 생물종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종의 감소는 경고 수준까지 왔습니다. [33] 우리는 이러한 종의 감소를 무심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인간 활동과 관련된 이유로 많은 생물 종들이 사라졌고, 수많은 생물종이 그들의 존재 자체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권리는 없습니다.
[34] 동물과 새들과 같은 커다란 동물 뿐 아니라 땅과 습지, 나무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산업과 상업적으로 접근하면 종종 더 큰 문제를 만들에 냅니다. 인간의 개입이란 것이 주로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과 소비주의를 위한 것이어서 사실 지구를 더욱 빈곤하고 추하게 만듭니다.
[35] 고속도로 건설, 수자원 댐, 산림 개발은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여 동물 개체군들을 밀어냅니다. 그들은 지구 생물의 기본적 균형의 일부분이므로 이러한 파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36] 쉽고 빠르게 이익을 얻으려고만 한다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시스템을 돌보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물건이나 집 등을 구매할 때, 이러한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생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37] 생물 다양성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거나 적게 받는 토종 생물종이 풍부한 지역 등 세계 생태계에서 특별한 주의와 보호가 필요한 지역이 있습니다. [38] 예를 들어,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과 콩고 분지나 대수층과 빙하 등은 지구 전체와 미래 인류를 위하여 중요한 지역입니다. [39] 삼림과 습지대를 관리하는 것에 주의 깊은 연구와 지혜로운 계획이 필요합니다.
[40] 대양은 인류의 삶을 위하여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다른 자연 환경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41] 파괴적인 어업 방식에 따른 오염과 해수 온도 상승, 바다로 버려진 산업폐기물들이 산호초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42] 멸종 위기의 생물종들을 보살피면서 보호 계획과 전략을 개발하며 관리하여야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IV.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43] 인간도 생명권과 행복권 및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자연 질서에 속해 있습니다. [44] 하지만 많은 도시들은 과밀하고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5] 일부 사람들은 특정 장소의 녹지를 사유화하여 다른 이들을 내쫓고 있습니다. [46] 경제적 기술적 성장이 항상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한 온전한 발전으로 이끌지 못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적 붕괴가 발생하였고, 마약과 돈과 인신 매매 등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47] 더 나아가 디지털 세계는 사람들이 현명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항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등의 매체들의 어지러운 소음들로 인하여 위대한 시인들, 철학자들, 신비가들과 예언자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씀을 넘쳐나는 정보로부터 구별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맺는 진정한 관계가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관계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관계를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단절하게 하고, 사람과 자연이 맺는 진실한 관계 보다는 컴퓨터를 통해서 꾸며진 감정들을 종종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체들을 우리가 잘 관리한다면 많은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성찰하기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물을 사용하는지 생각해 보고 낭비하는 요소들을 살펴봅시다. 교종이 제기하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47]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디지털 세계가 우리의 관계와 생활 태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습니까?

V. 세계의 불평등
[48] 인간 환경과 자연 환경은 함께 악화 되어가며, 특히 취약한 이들에게 더 영향을 미칩니다. 수질이 오염되고 물이 부족할 때 가난한 사람들은 생수를 사먹을 수 없습니다. 해양이 황폐화 되면, 해안가의 어부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49]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이 지구상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부유한 국가들은 그들의 역경에 대부분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부와 권력의 중심부가 미디어를 장악하고, 가난한 이들은 미디어에서 멀리 밀려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장하는 참된 생태적 접근은 언제나 취약한 사람을 살리는 사회적 접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부르짖음과 함께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50] 출생율의 감소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 증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극도의 소비주의가 문제입니다. 현재의 불평등한 분배 방식에서는,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소비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먹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먹이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생산된 음식의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바꿀 수 있습니다.
[51] 일반적으로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들은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생태적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그들이 풍요로운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하여 20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자원을 지나치게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부 부유한 국가들의 엄청난 소비로 야기된 온난화는 세계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 나라의 자원이 고갈되면 그것들을 가져가던 다국적 기업은 활동을 중단하고 철수해 버립니다. 그 곳에는 실업과 삼림파괴, 가난, 농업 자원의 고갈, 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절망만 남게 됩니다.
[52] 이러한 생태적 빚은 가난한 나라들을 희생하면서 부유한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지속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있어서 부유한 국가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하고 환경에 영향을 적게 준 국가들은 적은 정도의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인류 가족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

VI. 미약한 반응
[53]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대책을 찾아보게끔 합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우리의 공동의 집을 지난 200년 동안 만큼 고갈시킨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조화를 잃었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위기에 맞서는 문화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54] 국제 정치의 반응도 미약하며 이익 집단 세력이 너무 크고, 경제적 이익 집단들이 손쉽게 공동선을 내쳐 버립니다. [55] 사람들이 생태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나쁜 소비 습관은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56] 그러는 사이에 경제 세력들은 투기와 경제적 수익 추구를 우선시 하는 현재의 세계 체제를 계속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성찰하기
교종은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며, 경제 활동을 위한 사업이란 고귀한 직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며 환경을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53-56]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생활 습관이 위기에 맞서는 문화로 변화하려면 무엇부터 실행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VII. 다양한 의견
[60] 이러한 상황의 해결책으로, 새로운 기술의 적용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과 인간 자체가 문제이므로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를 줄이고 모든 개입을 중지하여야 한다는 양 극단이 있습니다. 현실성 있는 미래 계획은 양 극단의 관점에서 중용을 취한 것이어야 합니다. [61] 구체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교회가 단정적인 견해를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솔직한 대화와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환경 위기에 관한 세계의 문제는 개별적으로 분석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떻든 지금의 현실은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찰하기
지구적 불평등이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봅시다. 왜 가난한 사람들과 저개발국이 부자와 선진국보다 기후 변화에 더 취약한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고 세상은 환경 위기에 대하여 알면서도 그 반응은 왜 이렇게 미약할까요?

회칙 해설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마르코 10,51)

복잡한 길을 따라 걸어 보거나, 아니면 도로를 청소하는 캠페인에 참여해 보면,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에 질리곤 합니다. 어느 환경보호 행사에서 4차선 국도를 따라 나무를 심는 행사를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길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금방 버리고 간 패스트푸드 용기, 음료수 병, 담배 곽, 식품포장 백, 그리고 수많은 쓰레기들을 찾아냈습니다. 그 쓰레기들은 이제 “없어졌을”까요?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우리가 이 지구를 “거대한 쓰레기 더미”[21]로 만들고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그 도로 주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쓰레기를 도로 변에 버리면서 그것이 없어져 버린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는 버리는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시속 80킬로로 달리는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큰 이유입니다. 또한 버리는 문화는 잡동사니들이 집에 쌓여 가듯이 점진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잘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자연세계 안에서 어떻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도로변 쓰레기 같은 것 외에 다른 사례로 눈을 돌려 본다면 벌떼의 떼죽음 같은 것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양봉업자들이 세계적으로 대량의 벌떼들이 죽어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모든 벌떼들의 절반 이상이 폐사되었으나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알 수 없는 현상을 “군집붕괴현상”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벌떼는 세상을 위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과일과 열매의 삼분의 일은 벌들이 수분합니다. 양봉업자들은 벌을 따기 위하여 그들의 벌집을 매년 남쪽으로 싣고 가서 벌들을 사과 밭이나 농장 주변에 풀어 놓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농장들이 그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의 손으로 수분을 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음” 때문에 꿀을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벌에게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왜 벌들이 없어지는지 아직 누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범인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라고 하는 화학 물질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살충제는 벌들을 바로 죽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면역력을 약화 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메커니즘을 혼란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화학물질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사용이 허용되었고, 사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계속 늘어갔습니다. 몇몇 유럽 국가들이 사용을 금지 하였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용금지에 대하여 논란 중에 있습니다. 누구도 벌들을 죽이려고 의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단 하나의 원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질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러 요소들이 집중되어 발생합니다. 어떤 벌떼들은 면역을 떨어뜨리는 기생충들에 의하여 공격을 받았는데, 그 벌들이 기생충에 대항하지 못하는 원인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살충제를 사용하면서 그 살충제 뿐 아니라 거기에서 발생한 용기나 희석에 사용한 물 등의 폐기물들이 그 시스템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것에 대해서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전문적 양봉업자들은 그 해법을 찾아내긴 했지만, 그것은 죽는 벌들을 대체하도록 더 많은 벌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환경적 문제들을 이와 같이 “더 많이 만들어 내는” 산업적 해법으로 접근 할 때에, 이러한 생각과 태도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 체계는 훨씬 복잡하여, 하나의 과정에서의 폐기물이 종종 우리가 항상 보지 못하는 방법으로 다른 것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구미의 공단에서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서 페놀이 유출되었고, 이 물을 식수로 마신 대구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이고 임산부들이 자연 유산과 임신 중절 등의 고통을 당한 구미 페놀 유출 사건.
... 조류 인플루엔자(AI)로 폐사 된 가금류를 매몰한 지역의 주변 지하수가 오염되어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된 현상.
... 인간의 활동으로 자연계의 종들이 자연 상태 보다 100배에서 1000배의 속도로 없어져 가기 때문에, 우리가 “여섯 번째의 대멸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보고.
... 급성호흡부전으로 중환자실에 실려 오는 환자의 수가 증가한다는 신고에 대한 조사 결과,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었음이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방향제, 세정제등의 생활화학제품을 2017년 조사한 결과, 시판 중인 제품에서 ’인체 위해 우려’ 수준의 유해 화학 물질이 18개 제품에서 확인 되었고, 조사 대상의 80%인 1만 9000여개의 제품에서 733 종의 살생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나타난 정부 발표.
... 구형 티비와 컴퓨터들이 저개발국에 수출되어 대량으로 버려지고, 그곳에서 가난한 어린 아이들이 재생 산업을 통하여 소량의 금속을 회수하기 위하여 독성 있는 폐기물들을 선별하는데 동원되고 있는 현상.

이런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우리가 버린 폐기물이 이런 영향을 주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든 연관되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장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연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연구를 통한 과학적 분석능력은 환경 운동을 위한 가장 중요한 하나의 동기부여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연관성에 관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종은 청년 시절에 한 때 화학자로서 교육 받기는 하였지만 그는 과학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회칙을 구성하면서 교황청 학자들은 과학정치학회의 도움을 받았고 자연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하여 이 회칙은 명확하고 비판적이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서두 부분과 이번 장의 마지막 부분(17-22, 43-59)에서 교종은 성서의 꾸짖는 예언자처럼 보입니다. 그는 상황이 심각하고 회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것을 “전례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는”[20] “상업적 이익과 관련된” 기술의 확산에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종은, 우리들이 “가난한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소외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49]를 듣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국제 정치의 대응이 얼마나 미약한지”, 그리고 “피상적인 말, 어쩌다 하는 자선 행위, 마지못해 보이는 환경에 대한 관심”[54]에 제한되어 있음에 관하여 국제 정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락 등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세계가 실제로 얼마나 유한하고 덧없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56]하는 부자 나라들의 많은 일반 시민들도 비판합니다. 환경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의 부족은, 가난한 자들을 버려두는 것으로부터, 돈의 힘이 모든 곳에 미치고 있으며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교종이 이러한 점들을 연결하고 있음에 주목해 봅시다. 교종의 요점은 우리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종은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악행들을 조장하는 길: 알아채고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회피적”인가를 언급하며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지만, 가슴[59] 이 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거대한 상호 연관적 문제들에 접하게 되면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종은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으로 창조되었기에 반드시 관대함과 연대와 배려에서 나오는 행동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58] 우리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어디에 핵심 문제가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장의 중간부로서[23-42],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 가지 특별한 위기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기후변화, 물, 그리고 생물 다양성입니다. 이들이 문제의 핵심이며, 우리가 이 현상을 더 잘 볼 수 있다면, 어떻게 우리의 삶이 변화해야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종은 기후변화 문제로 시작하며, 그것을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과제”로 표현합니다[25].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닌 요인들도 있지만, 교종은 인류에 의한 대량의 화석 연료의 사용 증가, 인간이 일으킨 산림 황폐화, 그리고 농업의 확장을 지구온난화의 “온실효과”의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기 중에 탄소 및 기타 열을 차단하는 가스의 증가는 지구의 온도와 기후의 패턴을 유지하는 지구의 “호흡주기”를 망가트렸습니다. 무엇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매우 위협적이며, 이러한 위협은 대부분 그것을 조절할 자원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국가에 영향을 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교종은 대기는 “공동선”이며,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 국제적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때때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단순히 흑백논리로 보고 화석 연료가 오염을 일으키는지 아닌지만 단순하게 보는 경향 때문에 혼란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대기의 문제는 그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어떤 독성 물질이 생긴 것이라기보다, 온도, 해수면 높이, 빙하용융, 기후변화 같은 지구에 관한 많은 시스템을 유지하는 자연 주기에 과부하가 걸린 것입니다. 어떤 질병이 발생한 문제 같은 것이 아니라, 비만이나 고혈압 때문에 건강 문제가 발생한 것과 유사합니다.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무너질 때까지, 과도한 압력이 전체 시스템에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하느님은 항상 용서하시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 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온도의 큰 변화 없이 대기 중에 방출할 수 있는 탄소의 양에는 대략적 한계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지난 두 세기 동안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미 그 절반을 넘었고, 그리고 우리는 50년 안에 그 한계의 최대치에 도달할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교종이 강조하는 두 번째 문제는 물입니다. 대기와 마찬가지로 물은 생명을 위한 기본인데 어떤 지역의 우물은 말라 버렸습니다. 가장 무서운 결과가 “수십년” 안에는 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수십년이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015년 여름,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세기적 가뭄에 관하여 많은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수천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고, 많은 양의 식량이 역시 생산되고 있는 곳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최소한의 강우량만 유지 되면 풍부한 곡물들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진 다른 지역인 칠레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물 문제 역시 기후 변화에 의하여 발생하는데, 산악지대에 적설량이 줄어들고 빙하가 줄어드는 현상 때문에 계절에 따라 녹아서 발생하는 물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물은 지하수를 끌어 올려 공급 하지만, 이 대수층 역시 말라 버렸습니다. 물이 없다면, 땅은 죽고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물 위기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언급한 “선진국들과 부유한 사회계층이 현재 소비 수준을 계속하여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27]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된 세 번째 문제는 생물 다양성의 감소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주제도 아니지만 잘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남아메리카나 인도네시아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태 시스템의 광범위한 파괴로 인하여 많은 종들이 돌이킬 수 없게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하며 오랫동안 경고를 해 왔습니다. 교종은 이것을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우리 때문에 수많은 생물종들이 더 이상 그들의 존재 자체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지 못할 것입니다”[33] 생물 종들은 서식지가 필요하고, 만약 우리가 그 서식지를 파괴한다면, 우리는 그 종들을 소멸시키게 됩니다. 자연을 충분하게 보존하지 않으면 광범위한 파괴를 불러일으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모든 이러한 파괴가 값싼 일회용 가구를 만들거나 혹은 한계 토양에서 작물을 연속하여 몇 계절 동안 키우는 등 “빠르고 쉽게 이익을 얻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가 너무 빠른 순환활동의 문제이고, 물은 고갈되는 것이 문제라면, 생물 다양성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지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생물들의 멸종은 우리 사회와 경제의 신속화(18) 때문에 비롯된 로드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에게 자연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인식하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사용되지 않은” 자연의 땅을 보면, 그것을 우리가 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 한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너무 빠른 작물 생산 활동, 물의 고갈, 인간의 자연 지배. 이 세 가지 외에도, 교종은 우리가 가난한 이들의 특별한 어려움을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그 문제를 피상적으로 [49]바라보는 것에 관한 메시지를 강조하려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이 지구의 주요 소비자가 아니었음에도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난한 지역들과 국가들은 고급 생수로 물 공급 부족을 해결해 나갈 수도 없으며, “가난한 해안 주민들”을 이주시키거나 방파제들을 건설할 수도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의 환경 문제에 대하여 “지나친 소비주의 대신에 인구 증가를 비난하는”[50] 사람들에게 특별히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난한 이들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생활 태도입니다. 그는 회칙을 통하여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49] 는 것을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환경에 대한 참된 보호는 가난을 만들고 지속하는 사회 안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첫 번째 장에서, 교종은 단지 우리가 당면한 환경적 방종의 표면만을 훑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지구와 우리의 관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 충분히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친환경”에 관하여 듣고 있지만, 교종은 부유한 나라들이 특별히 앞장서길 진지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오직 하나의 “공동의 집”이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렬하게 자각하고 그것을 기꺼이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19]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위한 질문들
1. 교종 프란치스코가 말씀하신 위기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어떻게 느끼십니까? 긴급하다고 느껴집니까? 절망적 입니까? 좌절감이 듭니까? 우리는 처음의 느낌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당신이 느낀 것에 대하여 답변을 준다면 어떻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2. 우리의 집에서 기르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사용하는 물의 원천 및 우리 자신의 “탄소 발자국”에 관하여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있는 자연과 또 어떤 것들이 탄소 발자국에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우리 자신이 이 아픔을 느끼고 그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하도록 용기를 얻기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종의 요청을 기억하며 매일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생각해 봅시다.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우리가 더욱 더 연관성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더욱 더 창조적인 길로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기도
(요한 6,5-13)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군중들을 위한 음식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비웃었습니다. 그곳은 사막이었고, 그들은 음식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년이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축복 하시자, 그 어린 소년이 내어 놓은 것이 군중들을 먹이도록 늘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린 소년은 그가 가진 것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식을 내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무엇과 같은 지를 묵상해 봅시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당신이 가져온 빵 조각들과 물고기들을 늘려 주시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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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01 하늘땅물벗 2주년 서강벗소개

제1장 우리의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작성자
태희 홍
작성일
2018-10-09 16:53
조회
72
제1장. 우리의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회칙 요약
[17] 신학적 혹은 철학적 성찰보다는 우리의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18] 오늘날 삶과 노동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리 움직이는 현상을 “신속화”라고 지칭됩니다. 인간의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대부분은 인간 존엄성이나 생태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19] 인류는 지속성과 상관없이 지구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를 방금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던져진 환경에 관한 주요 질문들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언제까지나 숨겨질 수는 없습니다.

I. 오염과 기후변화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
[20] 오염은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한 부분입니다. 오염된 대기로 숨을 쉬는 것은 특히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21] 독성 폐기물은 공해 문제의 범인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데나 매립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집인 지구를 “엄청난 쓰레기 더미”로 만듭니다. 한 때 아름다웠던 풍경이 쓰레기 더미로 뒤덮였습니다.
[22] 종이나 다른 물건들의 대부분이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버리는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손쉽게 재활용 될 수 있는 종이도 한번 사용되고 버려집니다. 한 번 사용되고 또 재사용 하는 순환 방식을 만듦으로써, 소비를 절제하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최소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공재인 기후
[23] 기후는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이며 인간 삶의 많은 필수 조건들과 연관되어 있는 복잡계입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 온난화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확실한 과학적 견해”로 제기되었습니다. 화산활동과 태양의 활동 주기 같은 다른 요소들도 온난화에 영향을 주지만, 우리의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이 광범위한 온실 가스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24] 기후 변화는 모든 생명체의 기초가 되는 탄소의 순환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용할 수 있는 물 공급이 감소하였고, 농업 생산이 줄어들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메탄 가스의 배출이 증가하였습니다.
[25] 가난한 이들은 이러한 기후 변화에 부자들보다 더 많이 영향을 받습니다.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인구의 거의 3분의 2가 해안 근접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농업과 어업과 산림업 및 지구의 가난한 이들의 대부분의 생계 수단에 영향을 줍니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물과 식물이 이주하게 되면 가난한 이들 또한 생계에 타격을 받아 불안감을 안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떻게 이들의 비극에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26] 하지만 정치적 경제적 힘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그 문제들을 부정하려 합니다. 그들은 고통받는 이들의 곤경을 무시하면서 이에 관한 과학적 사실에 대한 논쟁만 합니다. 우리는 오염 가스를 줄이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한 계획이 긴급히 필요합니다.

성찰하기
?기후 변화의 원인에 대하여 오늘날 과학적으로 알려진 견해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석탄과 석유등 화석 연료가 기후 변화의 원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5], [26]항의 가난한 이들이 특별히 더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난하고 약자입니까? 아니면 부자이고 강자입니까?

II. 물의 문제
[27] 잘사는 나라들에 있어서 자원을 낭비하고 버리는 습관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한편에서는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8] 깨끗한 식수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 때는 풍부하였던 물 공급이 이제는 수요가 지속적 공급을 초과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물 부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9] 가난한 나라에서 이용 가능한 물의 대부분이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수많은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 되고 있고, 농민들에게는 낮은 생산성의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되는 물조차 산업폐기물과 화학제품들로 오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30] 어떤 곳에서는 이 부족한 물이 시장 논리에 지배되는 상품이 되어, 가난한 이들은 돈을 주고 사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권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사회적 부채”를 지고 있으므로, 가난한 이들에게 물과 위생 시설을 마련해 주려고 재정지원을 확대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물의 낭비가 지속되는 선진국들은 저개발 물 부족 국가와의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 이러한 심각성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1] 물과 그 것을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물 부족이 발생하면서, 다국적 대기업들이 물을 통제하면 커다란 분쟁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III. 생물 다양성의 감소
[32] 경제, 상업, 생산 활동에 대한 근시안적 접근으로 지구의 자원이 착취되고 있습니다. 숲과 삼림 지대의 손실은 생물종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종의 감소는 경고 수준까지 왔습니다. [33] 우리는 이러한 종의 감소를 무심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인간 활동과 관련된 이유로 많은 생물 종들이 사라졌고, 수많은 생물종이 그들의 존재 자체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권리는 없습니다.
[34] 동물과 새들과 같은 커다란 동물 뿐 아니라 땅과 습지, 나무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산업과 상업적으로 접근하면 종종 더 큰 문제를 만들에 냅니다. 인간의 개입이란 것이 주로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과 소비주의를 위한 것이어서 사실 지구를 더욱 빈곤하고 추하게 만듭니다.
[35] 고속도로 건설, 수자원 댐, 산림 개발은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여 동물 개체군들을 밀어냅니다. 그들은 지구 생물의 기본적 균형의 일부분이므로 이러한 파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36] 쉽고 빠르게 이익을 얻으려고만 한다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생태시스템을 돌보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물건이나 집 등을 구매할 때, 이러한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생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37] 생물 다양성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거나 적게 받는 토종 생물종이 풍부한 지역 등 세계 생태계에서 특별한 주의와 보호가 필요한 지역이 있습니다. [38] 예를 들어,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과 콩고 분지나 대수층과 빙하 등은 지구 전체와 미래 인류를 위하여 중요한 지역입니다. [39] 삼림과 습지대를 관리하는 것에 주의 깊은 연구와 지혜로운 계획이 필요합니다.
[40] 대양은 인류의 삶을 위하여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다른 자연 환경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41] 파괴적인 어업 방식에 따른 오염과 해수 온도 상승, 바다로 버려진 산업폐기물들이 산호초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42] 멸종 위기의 생물종들을 보살피면서 보호 계획과 전략을 개발하며 관리하여야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IV. 인간 삶의 질의 저하와 사회 붕괴
[43] 인간도 생명권과 행복권 및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자연 질서에 속해 있습니다. [44] 하지만 많은 도시들은 과밀하고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45] 일부 사람들은 특정 장소의 녹지를 사유화하여 다른 이들을 내쫓고 있습니다. [46] 경제적 기술적 성장이 항상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한 온전한 발전으로 이끌지 못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적 붕괴가 발생하였고, 마약과 돈과 인신 매매 등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47] 더 나아가 디지털 세계는 사람들이 현명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항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등의 매체들의 어지러운 소음들로 인하여 위대한 시인들, 철학자들, 신비가들과 예언자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씀을 넘쳐나는 정보로부터 구별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맺는 진정한 관계가 인터넷을 통한 가상의 관계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관계를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단절하게 하고, 사람과 자연이 맺는 진실한 관계 보다는 컴퓨터를 통해서 꾸며진 감정들을 종종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매체들을 우리가 잘 관리한다면 많은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성찰하기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물을 사용하는지 생각해 보고 낭비하는 요소들을 살펴봅시다. 교종이 제기하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47]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디지털 세계가 우리의 관계와 생활 태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습니까?

V. 세계의 불평등
[48] 인간 환경과 자연 환경은 함께 악화 되어가며, 특히 취약한 이들에게 더 영향을 미칩니다. 수질이 오염되고 물이 부족할 때 가난한 사람들은 생수를 사먹을 수 없습니다. 해양이 황폐화 되면, 해안가의 어부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49]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이 지구상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부유한 국가들은 그들의 역경에 대부분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부와 권력의 중심부가 미디어를 장악하고, 가난한 이들은 미디어에서 멀리 밀려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장하는 참된 생태적 접근은 언제나 취약한 사람을 살리는 사회적 접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부르짖음과 함께 동시에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50] 출생율의 감소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 증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극도의 소비주의가 문제입니다. 현재의 불평등한 분배 방식에서는,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소비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먹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먹이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생산된 음식의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바꿀 수 있습니다.
[51] 일반적으로 북반구의 부유한 나라들은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생태적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그들이 풍요로운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하여 20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자원을 지나치게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부 부유한 국가들의 엄청난 소비로 야기된 온난화는 세계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 나라의 자원이 고갈되면 그것들을 가져가던 다국적 기업은 활동을 중단하고 철수해 버립니다. 그 곳에는 실업과 삼림파괴, 가난, 농업 자원의 고갈, 공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절망만 남게 됩니다.
[52] 이러한 생태적 빚은 가난한 나라들을 희생하면서 부유한 국가들이 경제 발전을 지속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있어서 부유한 국가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하고 환경에 영향을 적게 준 국가들은 적은 정도의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인류 가족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

VI. 미약한 반응
[53]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대책을 찾아보게끔 합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우리의 공동의 집을 지난 200년 동안 만큼 고갈시킨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조화를 잃었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위기에 맞서는 문화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54] 국제 정치의 반응도 미약하며 이익 집단 세력이 너무 크고, 경제적 이익 집단들이 손쉽게 공동선을 내쳐 버립니다. [55] 사람들이 생태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나쁜 소비 습관은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56] 그러는 사이에 경제 세력들은 투기와 경제적 수익 추구를 우선시 하는 현재의 세계 체제를 계속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성찰하기
교종은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은 본질적인 것이며, 경제 활동을 위한 사업이란 고귀한 직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며 환경을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53-56]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생활 습관이 위기에 맞서는 문화로 변화하려면 무엇부터 실행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VII. 다양한 의견
[60] 이러한 상황의 해결책으로, 새로운 기술의 적용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과 인간 자체가 문제이므로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를 줄이고 모든 개입을 중지하여야 한다는 양 극단이 있습니다. 현실성 있는 미래 계획은 양 극단의 관점에서 중용을 취한 것이어야 합니다. [61] 구체적인 질문들에 대하여 교회가 단정적인 견해를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솔직한 대화와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환경 위기에 관한 세계의 문제는 개별적으로 분석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떻든 지금의 현실은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찰하기
지구적 불평등이 어떻게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봅시다. 왜 가난한 사람들과 저개발국이 부자와 선진국보다 기후 변화에 더 취약한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고 세상은 환경 위기에 대하여 알면서도 그 반응은 왜 이렇게 미약할까요?

회칙 해설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마르코 10,51)

복잡한 길을 따라 걸어 보거나, 아니면 도로를 청소하는 캠페인에 참여해 보면,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에 질리곤 합니다. 어느 환경보호 행사에서 4차선 국도를 따라 나무를 심는 행사를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길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금방 버리고 간 패스트푸드 용기, 음료수 병, 담배 곽, 식품포장 백, 그리고 수많은 쓰레기들을 찾아냈습니다. 그 쓰레기들은 이제 “없어졌을”까요?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우리가 이 지구를 “거대한 쓰레기 더미”[21]로 만들고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그 도로 주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쓰레기를 도로 변에 버리면서 그것이 없어져 버린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는 버리는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시속 80킬로로 달리는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큰 이유입니다. 또한 버리는 문화는 잡동사니들이 집에 쌓여 가듯이 점진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잘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 자연세계 안에서 어떻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도로변 쓰레기 같은 것 외에 다른 사례로 눈을 돌려 본다면 벌떼의 떼죽음 같은 것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양봉업자들이 세계적으로 대량의 벌떼들이 죽어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모든 벌떼들의 절반 이상이 폐사되었으나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알 수 없는 현상을 “군집붕괴현상”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벌떼는 세상을 위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먹는 과일과 열매의 삼분의 일은 벌들이 수분합니다. 양봉업자들은 벌을 따기 위하여 그들의 벌집을 매년 남쪽으로 싣고 가서 벌들을 사과 밭이나 농장 주변에 풀어 놓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농장들이 그 열매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의 손으로 수분을 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음” 때문에 꿀을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벌에게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왜 벌들이 없어지는지 아직 누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범인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라고 하는 화학 물질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살충제는 벌들을 바로 죽이지는 않지만, 그들의 면역력을 약화 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메커니즘을 혼란시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화학물질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사용이 허용되었고, 사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계속 늘어갔습니다. 몇몇 유럽 국가들이 사용을 금지 하였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용금지에 대하여 논란 중에 있습니다. 누구도 벌들을 죽이려고 의도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단 하나의 원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질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러 요소들이 집중되어 발생합니다. 어떤 벌떼들은 면역을 떨어뜨리는 기생충들에 의하여 공격을 받았는데, 그 벌들이 기생충에 대항하지 못하는 원인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살충제를 사용하면서 그 살충제 뿐 아니라 거기에서 발생한 용기나 희석에 사용한 물 등의 폐기물들이 그 시스템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것에 대해서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전문적 양봉업자들은 그 해법을 찾아내긴 했지만, 그것은 죽는 벌들을 대체하도록 더 많은 벌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환경적 문제들을 이와 같이 “더 많이 만들어 내는” 산업적 해법으로 접근 할 때에, 이러한 생각과 태도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에 우리는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 체계는 훨씬 복잡하여, 하나의 과정에서의 폐기물이 종종 우리가 항상 보지 못하는 방법으로 다른 것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구미의 공단에서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서 페놀이 유출되었고, 이 물을 식수로 마신 대구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이고 임산부들이 자연 유산과 임신 중절 등의 고통을 당한 구미 페놀 유출 사건.
... 조류 인플루엔자(AI)로 폐사 된 가금류를 매몰한 지역의 주변 지하수가 오염되어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된 현상.
... 인간의 활동으로 자연계의 종들이 자연 상태 보다 100배에서 1000배의 속도로 없어져 가기 때문에, 우리가 “여섯 번째의 대멸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보고.
... 급성호흡부전으로 중환자실에 실려 오는 환자의 수가 증가한다는 신고에 대한 조사 결과,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었음이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방향제, 세정제등의 생활화학제품을 2017년 조사한 결과, 시판 중인 제품에서 ’인체 위해 우려’ 수준의 유해 화학 물질이 18개 제품에서 확인 되었고, 조사 대상의 80%인 1만 9000여개의 제품에서 733 종의 살생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나타난 정부 발표.
... 구형 티비와 컴퓨터들이 저개발국에 수출되어 대량으로 버려지고, 그곳에서 가난한 어린 아이들이 재생 산업을 통하여 소량의 금속을 회수하기 위하여 독성 있는 폐기물들을 선별하는데 동원되고 있는 현상.

이런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우리가 버린 폐기물이 이런 영향을 주려고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든 연관되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장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연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연구를 통한 과학적 분석능력은 환경 운동을 위한 가장 중요한 하나의 동기부여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연관성에 관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종은 청년 시절에 한 때 화학자로서 교육 받기는 하였지만 그는 과학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회칙을 구성하면서 교황청 학자들은 과학정치학회의 도움을 받았고 자연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하여 이 회칙은 명확하고 비판적이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서두 부분과 이번 장의 마지막 부분(17-22, 43-59)에서 교종은 성서의 꾸짖는 예언자처럼 보입니다. 그는 상황이 심각하고 회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것을 “전례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는”[20] “상업적 이익과 관련된” 기술의 확산에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종은, 우리들이 “가난한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소외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49]를 듣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국제 정치의 대응이 얼마나 미약한지”, 그리고 “피상적인 말, 어쩌다 하는 자선 행위, 마지못해 보이는 환경에 대한 관심”[54]에 제한되어 있음에 관하여 국제 정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락 등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세계가 실제로 얼마나 유한하고 덧없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자신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56]하는 부자 나라들의 많은 일반 시민들도 비판합니다. 환경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의 부족은, 가난한 자들을 버려두는 것으로부터, 돈의 힘이 모든 곳에 미치고 있으며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교종이 이러한 점들을 연결하고 있음에 주목해 봅시다. 교종의 요점은 우리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종은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악행들을 조장하는 길: 알아채고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회피적”인가를 언급하며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지만, 가슴[59] 이 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거대한 상호 연관적 문제들에 접하게 되면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종은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으로 창조되었기에 반드시 관대함과 연대와 배려에서 나오는 행동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58] 우리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어디에 핵심 문제가 있는지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장의 중간부로서[23-42],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 가지 특별한 위기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기후변화, 물, 그리고 생물 다양성입니다. 이들이 문제의 핵심이며, 우리가 이 현상을 더 잘 볼 수 있다면, 어떻게 우리의 삶이 변화해야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종은 기후변화 문제로 시작하며, 그것을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과제”로 표현합니다[25]. 인간에 의한 것이 아닌 요인들도 있지만, 교종은 인류에 의한 대량의 화석 연료의 사용 증가, 인간이 일으킨 산림 황폐화, 그리고 농업의 확장을 지구온난화의 “온실효과”의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기 중에 탄소 및 기타 열을 차단하는 가스의 증가는 지구의 온도와 기후의 패턴을 유지하는 지구의 “호흡주기”를 망가트렸습니다. 무엇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매우 위협적이며, 이러한 위협은 대부분 그것을 조절할 자원이 부족한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국가에 영향을 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교종은 대기는 “공동선”이며,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 국제적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때때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단순히 흑백논리로 보고 화석 연료가 오염을 일으키는지 아닌지만 단순하게 보는 경향 때문에 혼란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대기의 문제는 그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어떤 독성 물질이 생긴 것이라기보다, 온도, 해수면 높이, 빙하용융, 기후변화 같은 지구에 관한 많은 시스템을 유지하는 자연 주기에 과부하가 걸린 것입니다. 어떤 질병이 발생한 문제 같은 것이 아니라, 비만이나 고혈압 때문에 건강 문제가 발생한 것과 유사합니다.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무너질 때까지, 과도한 압력이 전체 시스템에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하느님은 항상 용서하시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 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온도의 큰 변화 없이 대기 중에 방출할 수 있는 탄소의 양에는 대략적 한계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지난 두 세기 동안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미 그 절반을 넘었고, 그리고 우리는 50년 안에 그 한계의 최대치에 도달할 시점에 처해 있습니다.
교종이 강조하는 두 번째 문제는 물입니다. 대기와 마찬가지로 물은 생명을 위한 기본인데 어떤 지역의 우물은 말라 버렸습니다. 가장 무서운 결과가 “수십년” 안에는 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수십년이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015년 여름,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세기적 가뭄에 관하여 많은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수천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고, 많은 양의 식량이 역시 생산되고 있는 곳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최소한의 강우량만 유지 되면 풍부한 곡물들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진 다른 지역인 칠레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물 문제 역시 기후 변화에 의하여 발생하는데, 산악지대에 적설량이 줄어들고 빙하가 줄어드는 현상 때문에 계절에 따라 녹아서 발생하는 물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물은 지하수를 끌어 올려 공급 하지만, 이 대수층 역시 말라 버렸습니다. 물이 없다면, 땅은 죽고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물 위기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언급한 “선진국들과 부유한 사회계층이 현재 소비 수준을 계속하여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27]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된 세 번째 문제는 생물 다양성의 감소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주제도 아니지만 잘 알려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남아메리카나 인도네시아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태 시스템의 광범위한 파괴로 인하여 많은 종들이 돌이킬 수 없게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하며 오랫동안 경고를 해 왔습니다. 교종은 이것을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우리 때문에 수많은 생물종들이 더 이상 그들의 존재 자체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지 못할 것입니다”[33] 생물 종들은 서식지가 필요하고, 만약 우리가 그 서식지를 파괴한다면, 우리는 그 종들을 소멸시키게 됩니다. 자연을 충분하게 보존하지 않으면 광범위한 파괴를 불러일으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모든 이러한 파괴가 값싼 일회용 가구를 만들거나 혹은 한계 토양에서 작물을 연속하여 몇 계절 동안 키우는 등 “빠르고 쉽게 이익을 얻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가 너무 빠른 순환활동의 문제이고, 물은 고갈되는 것이 문제라면, 생물 다양성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지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생물들의 멸종은 우리 사회와 경제의 신속화(18) 때문에 비롯된 로드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에게 자연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인식하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사용되지 않은” 자연의 땅을 보면, 그것을 우리가 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 한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너무 빠른 작물 생산 활동, 물의 고갈, 인간의 자연 지배. 이 세 가지 외에도, 교종은 우리가 가난한 이들의 특별한 어려움을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그 문제를 피상적으로 [49]바라보는 것에 관한 메시지를 강조하려 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이 지구의 주요 소비자가 아니었음에도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난한 지역들과 국가들은 고급 생수로 물 공급 부족을 해결해 나갈 수도 없으며, “가난한 해안 주민들”을 이주시키거나 방파제들을 건설할 수도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의 환경 문제에 대하여 “지나친 소비주의 대신에 인구 증가를 비난하는”[50] 사람들에게 특별히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난한 이들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의 생활 태도입니다. 그는 회칙을 통하여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49] 는 것을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환경에 대한 참된 보호는 가난을 만들고 지속하는 사회 안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첫 번째 장에서, 교종은 단지 우리가 당면한 환경적 방종의 표면만을 훑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지구와 우리의 관계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 충분히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친환경”에 관하여 듣고 있지만, 교종은 부유한 나라들이 특별히 앞장서길 진지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오직 하나의 “공동의 집”이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렬하게 자각하고 그것을 기꺼이 우리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19]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을 위한 질문들
1. 교종 프란치스코가 말씀하신 위기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어떻게 느끼십니까? 긴급하다고 느껴집니까? 절망적 입니까? 좌절감이 듭니까? 우리는 처음의 느낌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당신이 느낀 것에 대하여 답변을 준다면 어떻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2. 우리의 집에서 기르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사용하는 물의 원천 및 우리 자신의 “탄소 발자국”에 관하여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있는 자연과 또 어떤 것들이 탄소 발자국에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우리 자신이 이 아픔을 느끼고 그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하도록 용기를 얻기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종의 요청을 기억하며 매일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생각해 봅시다.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우리가 더욱 더 연관성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더욱 더 창조적인 길로 나아가는 자리입니다.

기도
(요한 6,5-13)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군중들을 위한 음식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비웃었습니다. 그곳은 사막이었고, 그들은 음식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년이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축복 하시자, 그 어린 소년이 내어 놓은 것이 군중들을 먹이도록 늘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린 소년은 그가 가진 것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식을 내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무엇과 같은 지를 묵상해 봅시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당신이 가져온 빵 조각들과 물고기들을 늘려 주시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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